아버지의 투병일기(치매 간병 일기)

나실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

여의도시인 2010. 1. 13. 10:44

아버지의 노래소리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여의도 시인

 

아버지의 노래소리를 가만히 방문 밖에서 들어 봤다

나실때 ~괴로움 다 잊으시고...하면서 어머님 은혜를 부르시는데 음률시처럼 들려온다

가사가 나오다 말다...

곡조는 아버지 마음대로다

언제적 배우셨는지 어머님 은혜를 노래하면서 지금 나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

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하고 계실까

나의 코 끝이 찡해온다

아버지 나의 모든 잘못 용서 해주세요ㅎㅎㅎ..

세월을 돌아본다

자식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을 얼마나 고생을 시켰는지...

어려서 배 앓이를 너무 자주해서

아프다고 하면 나를 등쳐 업으시고 달음질 쳐 옆 마을 차의사 한테로 달려 가시던 나의 아버지

변비라서 관장을 시켜볼 일을 다 보고 나면 들쳐  없거나 손 잡고 오시던 나의 아버지 나의어머니

 

왜 나는 유독히 병 치레를 많이 했는지...그때의 기억들이 선하다

서너 살부터 여섯 살까지  일이고 보니 업혀 다니던 일은 기억할수가 있다

어머니 말씀으로는 내가 몽류병도 있었다나

자다말고 한 밤중에  벽을 붙어 다니면서 울기도 했다는데...

유독히 내가 아프다며는 부모님이 겁내는 이유는

내 위로 형이 첫 돌 지나 얼마 안 있어서 홍역으로 죽었기 때문이다

홍역이 전국적으로 돌며 대유행 할 때에 그 아이에게 홍역이 와서 마을 어느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와서 하루도 안 되어 죽었다고 한다

그래서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내가 아프다면 열  일을 제쳐놓고서 뛰어서 다니셨던 것이다

"자라보고 놀란가슴 솥 뚜껑보고 놀란다"는 속담처럼 혹시 나를 잃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이다

청소년기에 자라면서 얼마나 속 시켜 드렸던가

학교에서 육성회비 못 가지온 사람은 복도에 꿇어 앉게하고 수업시간에 제외되던 일...그것이 싫어서 송도 바닷가에서 바닥짚고 개 헤엄치다 보니 아버지가 찾아와서 물끄러미 쳐다 보시던 일

나는 그야말로 말썽꾸러기였다

 

좀 더 장성하면서 내 나름대로 사업을 한다고 부모님 만류에도 일 벌려서 손해 보던 일

가난한 형편에 똔 꾸어주고 여러 곳에서 못 봤고 그냥 안 받기로 하자

 "쟤는 돈 꾸어 주면  못받는것 뻔 하다"고 경계하면서 살라고 말씀 하시던 일 그 와중에도 어머니옆에서  아버지는 항상 나의 아군이셨다

묵묵히 그래도 "용돈없냐 어디 갈때는 없냐 "하시던 나의 아버지

지역사회 봉사한답시고 콩밭 배추밭에서 부모님께서는 일 하시는데 4-H 활동 한답시고 일을 빼 먹던 일 등이 불효아닌 불효가 아닌가

자식 아홉을 키우시는라고 등골이 휘신 나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모든 게 후회 스럽다

술 주정 하시는 아버지께 많이 대들고 싸웠다

그때엔 모든 것을 이해 하면서도 그 순간 만큼은 왜 대들었는지 지금보면 패륜아가 아닌가

물론 쫏겨 다니다가 감자 밭 옥수수 밭에서 가족들이 이슬 맞으면서 지낸적도... 하얀 눈 내리는날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추워도 덜덜 떨면서 한 밤중을 보내던 날들.. 강원도의 가슴 아픈 시련들이 떠 오른다

 

술이 깨시면 정말 다정스런 분이기에 술 안 드시길 바라는 맘은 우리가족  모두의 소망이었다

이런 것이 반복 되었고 너무나 반복적이기에 술 드셨다는것만 알아도 스트레스가 머리에 확 오를 정도였다

이런 일을 겪어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

 

세월은 많이 지나서 나의 몸으로 아버지를 막을 만하면서 술 취한 아버지께 대들기도 하였던 것이지만 지금은 후회할 뿐이다

그 모든 것을 다 감싸 주신 나의  아버지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있다

부모님 말씀대로 적게 먹고 가는 똥 싸는게 좋다는 말씀을 왜 안들었는지 ...돈 벌겠다고 성공 하겠다고 벌린 일들이 하나같이 나의 부채로 남아 지금껏 내 가는 길을 막고 있으니 ...그로 인해서 이를 보는 부모님이 너무 아파서 병이 드셨는지도 모른다

그리고 나에게 꾸어준 이에게 지끔 껏 마음고생을 시키고 있다

 

세상은 부지런함과 성실만으로 성공할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

2002년,2003년 태풍 피해후에 살아 볼 거라고 사채 4000만원을 쓴 것이 치명적인 나의 실수이고 돌이킬 수 없는 화근이었다

그 일로 농장, 작물등이 압류 후 경매로 다 날아 가고...

지금 쨟은 인생에 수억의 빚이 늘어나서 버티고 있다

태풍피해 2번이 나를 꼬꾸라지게 했다

지난 해에는 침수피해 2번 ㅎㅎㅎ억세게 운이 좋은것 인가

지금 껏 압류 경매4번을 겪었고 지금도 고향 집이 경매 진행중이다

 

지금 농장의 씨앗들은 막 노동해서  그 품삯으로 종자로 사 들인 것도 있고

내 손수자력으로 삽목해서 번식을 시킨 것도 있다

그런데 수해를 지난해 지독시리 입었으니 그 피해의 정확한 것은 올 봄을 지나 봐야만 안다

이 혹독한 겨울을 지난 것이 지난 수해피해 후유증에서 최후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

자연 피해는 누구에게 보상을 원 하지도  못 하고

또 인재로 인한 피해도 싸우기 싫어서 그냥 내 버려 두고있다 그냥 알아서 해주면 될 일을 소송하라 하니..세상이 이렇다

 

내게 온 시련이 나를 침몰치는 못할 것이다

내 뒤엔 하나님이 떡 하고 버티시기 때문이다

허나 그 하나님께 불 명예를 안 돌리려면 내가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되기에 오늘도 형편 껏 살아간다

그렇기에  나는 지금도 포기치 않고 가고 있다

그래야 신세 진 분들에게 모든 걸 갚을수있고 정리 할수 있겠기에  특허,취미,수집물등 을 어느 때에 처분하여 정리할까를 저울 질 하고 있다

농장의 정리도 다 그러하다

왜냐하면 섣불리 처분 하기엔 경기가 너무 안  좋기때문이다

 

모든 것을 정리 하면서 내 인생을 정리하여 하나님 믿는자가 채무를 못 갚아 괴로워 하는 그 심정을 깨끗이 씼어 내고 싶다

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 그 날이 빨리오기를 기다린다

부모에게 잘 하는 일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음을 이 나이에 알게 되어서

그리고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살아 계셨을때에 알게되어서 그래도 덜 후회할 것 같다

 

그래도 나는 도전한다

아버지의 병 낫기를 기도하며 내 부모님이 20년 회춘하기를 기도하며  내 형제들 하는 사업위에 하나님이 복 주시길... 나의 모든 짐을 지신 주님께 기도를 계속한다

요즈음은 종자목 춘란을 살펴본다

이것들이 커서 얼른 부채 갚는데 일조를 했으면 하고서 말이다..

간병 하면서 멀리서는 큰 일을 못 하기에 취미를 투자로 바꾸는 셈이다

아버지의 노래 소리가 멈췄다

의자에서 졸으시나 보다

 

잠언 23장22절

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

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에 금 사슬이니라

 

-여의도 시인- 2010.1.13. "아주 작은 것이 때로는 나중의  큰 효도보다 나을수 있습니다" 를 적다