진짜야식
여의도 시인
얘 0 0 아 무 구뎅이에 가서 무수 좀 가져 온나
하시면서 나를 부르신다
눈이 많이 내려서 발목이 빠진다
구덩이 앞에 눈을 방비로 대충 치우고
손을 호호 불면서 무우를 한 대야를 담고 구덩이 입구를 얼지않게 짚과 비료 포대로 도로 막는다
방 안에 들어오니 정말로 따뜻하다 "천국이 따로 없네"
엄마가 무를 씻어서 놓고 큰 칼로 껍질을 깍기 시작한다
우리 9남매 중 젖 먹이 막내 쌍둥이 둘만 빼고는 일곱이 그 무우 깍는 손 만을 쳐다보고 있다
요땅 소리만 나면 달려 나가는 달리기 선수처럼
손을 꼼지락 거리며 엄마 눈치만 살살 다들 보고있다
이윽고 엄마가 칼로 사 등분 하여 두동강씩 내어 길이 채 하나씩 준다
서열별로 우선 나 부터다
누에가 한밥 먹듯하며 우두둑 우두둑... 무우 씹는소리가 방안에 가득차기 시작한다
그 날 밤도 그 다음날 밤도 우린 무 한 대야씩 야식으로 해 치웠다
우리 어머니는 음식을 적게 안 하신다
그러면 얘들이 더 허기진다고 한번에 양껏 들게 하셨다
달걀을 삶아도 한번에 세판씩
그리고 가급적이면 먹던 못먹고 남기던 갯수가 똑같게 주시곤 하셨다
물론 돌리다 남으면 큰 놈부터 추가로 더 주시지만 원칙은 변함이 없으셨다
눈이 펄펄 내리는 한 겨울 1월의 긴 긴밤에
저릅을 덮어 엮은 북방 초가속의 우리는 그렇게 무우로 진짜 야식을 멋지게 해 치웠다
동그랑 무가 무 구덩이에서 지난 가을 잘라 낸 무 총자리에 무 잎이 노릇 노릇 치솟기 시작하는 이 때가 저장 된 무우 맛이 최고다
내가 기억하기엔 그 시절 그 때의 야식이 내겐 최고의 야식이었다
그 다음날 아침에는 온통 방안은 무 트림 냄새 뿐이었지만 연일 파티는계속되어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
아
그립다
진짜 야식이 정말 그립다
나무를 때던 구들이 너무 너무 따뜻 했는데...
-여의도 시인 - 2010.1.13,"이 추운 겨울에도 그 시절 진짜 야식이 있었습니다" 를 적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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